다대포몰운대3(마음이 힘들어질때)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건축물이다.(옮겨온 글 : 이외태)
서로 마음 든든한 사람이 되고 (자갈마당앞 바다풍경)
때때로 (자갈마당 내려가는길)
힘겨운 인생의 무게로 인하여 속마음 마저 막막할 때우리 서로 위안이 되는 (몰운대 객사에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누군가 사랑에는 조건이 따른다지만 (자갈마당)
우리의 바램은
지극히 작은 것이게 하고 더주고 덜 받음에
섭섭해 말며
문득 스치고 지나는 먼 회상속에서도
우리 서로 (몰운대 객사)
기억마다 반가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어쩌면 고단한 인생길
먼 길을 가다 (객사옆 벤치에서 울부부)
어느날 불현듯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시기에우리 서로 마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객사 건물도 아름답고 아늑함을준다)
견디기엔 한 슬픔이 너무 클 때
부르면 (다대포항)
달려올 수 있는 자리에 오랜 약속으로 머물길 기다리며더 없이 간절한 그리움으로 (잘 딱여진 몰운대오솔길)
눈 시리도록 바라보고픈 사람
우리 서로 끝없이 끝없이 (작은어선들이 정박해있는 다대포항)
기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옮겨온 글) (몰운대 시비)
2011년 5월 29일(다대포 몰운대에서) 윤정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