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이순신 장군

윤정이아빠 2010. 5. 6. 10:17

이순신장군의 연대기


* 연표의 모든 날짜는 음력임.

년도 나이 이순신 임진왜란
1545
1
■ 3월 8일 서울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남  
1572
28
■ 8월 훈련원 별과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불합격

*훈련원: 조선시대 군사들의 선발, 군사 교육 및 훈련을 담당하던 관청
*별과: 과거에서 본과 이외에 부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시험을 위해 따로 설치한 과

 
1576
32
■ 2월 식년무과 병과에 합격

*식년무과: 3년마다 정기적으로 무관을 뽑기 위해 실시한 시험, 갑과.을과.병과로 나뉨

 
1580
36
■ 7월 발포 수군만호가 됨(수군과 첫 인연)

*수군만호: 수군 조직에 속한 종4품 외직 무관 벼슬

 
1582
38
■ 1월 서익의 모함으로 수군만호에서 파직  
1587
43
■ 1월 조산보 만호가 됨
■ 8월 조산보 근처 녹둔도의 둔전관을 겸임(둔전경영 경험이 후에 수군경영에 도움이 됨)
■ 8월 이일의 무고로 파직되어 백의종군(1차)

*둔전: 조선시대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 군졸, 서리, 평민, 관노비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여 경작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지방 관청의 경비나 군량 등으로 사용함.
*백의종군: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감.

 
1589
45
■ 12월 전라도 정읍현감

*현감: 지방행정조직 중 가장 작은 단위인 ‘현’을 담당하는 지방관. 종5품

 
1591
47
■ 2월 13일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

*수군절도사: 조선시대 각 도 수군을 총지휘하기 위해 두었던 외직 무관 벼슬

 
1592
48
■ 4월 12일 거북선 완성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 5월 7일 옥포 해전, 합포 해전
■ 5월 8일 적진포 해전
■ 5월 29일 사천포 해전(거북선 첫 출전),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고 부상. 군관 나대용도 부상.
■ 6월 2일 당포 해전
■ 6월 5일 제1차 당항포 해전
■ 6월 7일 율포 해전
■ 7월 8일 한산도 해전(학익진 사용)
■ 7월 10일 안골포 해전
■ 8월 29일 장림포 해전9월 1일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부산포 해전. 녹둔 만호 정운 전사

*거북선: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돌격전함으로 그 겉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여 거북선이라 함. 이순신의 지휘아래 군관 나대용이 건조.
*학익진: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전법으로, 반원 안에 적 함대를 가두고 일시집중타격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함대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해야 가능한 것이다.

■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 4월 24일 이일, 상주에서 패함
■ 4월 28일 신립, 충주에서 패함
■ 4월 30일 선조, 서북지방으로 피난4월 곽재우 등 의병 일어남
■ 5월 2일 일본군 한성 점령
■ 6월 14일 평양 함락
■ 6월 선조 의주로 피난
■ 7월 의병 고경명 1차 금산전투. 고경명 전사
■ 10월 6일 진주 목사 김시민 진주성 전투 승리  (1차 진주성 전투)
■ 12월 명나라 이여송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들어옴

*임진왜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1592-1598) *의병: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적을 물리치기 위해 백성들이 스스로 조직한 군대

1593
49
■ 2월 6일~3월 8일 웅천포 해전
■ 5월 일본의 서진을 막기 위해 견내량 봉쇄
■ 7월 14일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김
■ 8월 10일 정철총통 제조
■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10월 9일 임명 교지 받음

*정철총통: 이순신의 지휘아래 군관 정사준이 일본 조총과 조선 승자총을 절충하여 정철(正鐵)로 만든 조총

■ 1월 8일 평양성 전투 승리
■ 1월 25일 벽제관 전투 패배
■ 2월 12일 권율 행주산성 전투 승리
■ 4월 일본군 한성에서 퇴각
■ 6월 22일 2차 진주성 전투 패배
■ 8월 일본군 철수 시작, 명군 철수 시작
■ 10월 1일 선조 한성 귀환 입성
1594
50
■ 3월 4일 제2차 당항포해전
■ 3월 6일 명나라 담종인의 금토패문에 항의
■ 9월 29일 1차 장문포 해전
■ 10월4일 2차 장문포 해전

*금토패문: 명나라 선유도사 담종인이 보낸 왜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서

■ 4월 명과 일본 서생포 회담
■ 8월 일본 장수 고니시 등 수교 요청
■ 12월 명나라 일본에 책봉사 파견 결정
1595
51
■ 2월 둔전 경영. 우수영 시찰
■ 5월 수군 경영위해 소금 제조
■ 1월~2월 명과 일본 웅천 회담
■ 4월 책봉사 한성 도착
■ 12월 일본 조선 사신 파견 요청
1596
52
■ 2월 둔전 경영
■ 5월 전염병으로 죽은 병사를 위해 여제를 지냄.
■ 1월~2월 김해, 거제, 안골포 일본군 철수
■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나라의 책봉에 반발하여 강화파기
■ 10월 일본 조선 재침 통보
1597
53
■ 2월26일 서울로 압송
■ 3월4일 감옥에 들어감
■ 4월1일 감옥에서 나옴. 백의종군(2차)
■ 4월13일 모친상을 당함
■ 7월2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지 받음
■ 8월28일 어란진 해전
■ 9월7일 벽파진 해전
■ 9월16일 명량해전
■ 10월14일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들음
■ 10월29일 고하도에 수군진영 설치
■ 1월 14일 약 20만의 일본군이 조선 재침
■ 1월 27일 원균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
■ 7월 원균의 삼도수군이 칠천량해전 대패. 원균 전사
■ 8월 일본군 전라도에 침입하여 남원성 함락9월 명군 직산전투 승리
■ 12월 23 ~ 1월 3일 명군 울산성 전투 패배
1598
54
■ 2월17일 고금도로 수군진영 옮김
■ 7월16일 명나라 수군과 연합함대 편성
■ 11월19일 노량해전. 이순신 적의 총탄에 맞아 선상에서 전사. 10명의 조선 장수 함께 전사

■ 8월18일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일본군 총 철수 명령
■ 11월 25일 잔여 일본군 부산에서 총 철수

                              



1. 옥포해전 (1592. 5. 7)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이순신, 원균 도도 다카도라
병력 24척의 판옥선과 57척의 작은 배들 30척
사상자 및 피해 없음 26척이 파괴되었으며 약 4000명이 사망함

옥포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첫 번째 해전이었다. 장군은 부산포 근처에 먼저 탐망선을 보내어서 살피게 하였다. 장군은 일본 함대의 규모와 전투방식을 알아내기 전까지 출전하지 않았다. 5월 7일에 그는 원균의 함대와 함께 출발하여 옥포로 향하였다. 일본 함대는 배에서 내려서 옥포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함대를 발견하자 바로 배에 탑승하였다. 장군은 일본군들이 모두 탑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사격을 명하였다. 장군의 함대는 배를 한 줄로 만드는 일자진을 취하고 있었다. 장군은 그 당시 매우 흔한 전법인 적의 배에 올라타는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배들에 함포 사격만 하도록 명하였고 일본 함대를 거의 다 파괴하였다. 옥포해전의 승리는 개전 이래 조선이 이룬 첫 승리였다.
 
2. 합포해전 (1592. 5. 7)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이순신, 원균 도도다카도라
전력 24척의 판옥선과 57척의 작은 배들 5 척
사상자및 피해 없음 5 척 파괴

옥포해전 후에 이순신 장군은 거제도에 있는 영등포에 정박할 예정이었으나 탐망선이 일본 배들이 오늘날의 진해인 합포를 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군은 즉시 함대를 그쪽으로 향하여 일본 배를 쫓았고 공격을 하였다. 일본인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하였다. 조선 함대는 모든 배를 파괴한 다음에 창원에 있는 남포로 향하였다.
 
 3. 적진포해전 (1592. 5. 8)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이순신 알려지지 않음
전력 24척의 판옥선과 57척의 작은 배들 13 척
사상자 및 피해 알려지지 않음 13 척 파괴

새벽에 이순신 장군은 일본 함대가 진해의 고리량에 정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군은 즉시 출정하여서 일본 함대를 뒤쫓았다. 장군은 고성에 있는 적진포에서 13척의 일본 선박을 발견하였다. 일본인들은 승선할 시간이 없어서 육지에서 조총으로 공격을 해왔다. 장군의 함대는 일본군을 활로 공격하였고 모든 배를 파괴하였다. 이 전투 이후 장군은 5월 9일에 본영이 있는 여수로 돌아갔다.
 
 4. 사천포해전 (1592. 5. 29)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이순신, 원균 알려지지 않음
전력 26척의 판옥선과 20척의 작은 배들 13 척
사상자 및 피해 알려지지 않음 13 척

본영으로 돌아온 뒤로 이순신 장군은 5월 27일까지 함대 전법을 훈련하거나 수군의 훈련에 주력하였다. 장군은 휘하 장수들과 함께 다음 해전에서의 전법을 의논하여서 전라좌수영과 연합하기로 결정하였다. 장군은 좌수영에 전갈을 보내서 6월 3일에 만나기로 하였다. 5월 27일에 원균이 전갈을 보내왔는데, 그의 함대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여 이순신 장군은 좌수영과 함대를 합하지 못하고 5월 29일에 단독으로 출전하였다.

장군은 원균의 함대와 만난 후에, 일본 함대를 뒤쫓아서 사천포에 정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군은 사천포 앞 바다가 좁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배를 일렬로 늘어 뜨리는 장사진을 펼치라고 명하고, 그대로 사천포로 향하였다. 일본 함대를 항구에서 유인해 내려고 하였으나 약 200여명의 일본군은 항구에서 조총으로 사격을 할 뿐이었다. 그때, 조수가 바끼자 장군의 함대는 항에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장군은 거북선을 최초로 내세우게 된다. 거북선은 함대가 진입하기 전에 먼저 돌격하여서 일본 배들을 흩뜨려 놓았다. 곧 일본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하였다. 그러자, 장군은 남은 모든 배들을 침몰시켰다. 장군은 이 해전에서 왼쪽 어깨에 조총을 맞아서 부상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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