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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서로 껴안으라

윤정이아빠 2013. 2. 21. 11:42

 

♡...  마음껏 서로 껴안으라  ...♡

 



(마음껏 서로 껴안으라)
『가족』
(최인호 | 샘터)

 

며칠 전 한밤중에 일어나 거실로 나와
냉장고를 열고 찬물을 컵에 따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다른 방에 자고 있던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 이유.~"
나는 아내의 방으로 가봤다.
요즘 먹은 것이 체해 줄곧 체기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는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빈둥거리고 있다가
인기척이 들려 나를 부른 모양이었다.
"저 달 좀 봐."
아내는 밑도 끝도 없이 중학교 운동장 위에 떠 있는
실낱같은 초승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봤는데,
과연 체기 탓이었는지 손이 차가웠다.
나는 아내를 안마해주기 시작했다.
아내의 다리는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옛날
어머니의 다리처럼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있었다.
순간 나는 지금 내가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혼돈을 느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함께 산에 가자고 유혹해도 고집불통이더니,
어떻게 다리를 이토록 형편없이 만들어놓은 것인가.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젊은 날의
아내를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문과대학 앞
잔디밭에서 쓸 만한 여학생이 있을까,
기생 점고하는 원님처럼 강의실에 들어오는
여학생들을 일일이 심사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분홍빛 스웨터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내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무청처럼 단단하고, 갓 잡은 생선처럼 싱싱하던
예쁜 두 다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느님은 선악과를 따 먹은 하와를
에덴의 동쪽에서 쫓아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이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을 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하느님의 말처럼 아내는 몹시 고생해 두 아이를 낳고도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어 두 다리가 이처럼
순두부가 될 정도로 길쌈하고 수고하고 있음인가.
아아,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내가
남이 아니고 둘이 아닌 하나이며,
타인의 생이 아니라 '자기 앞의 생'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여, 마음껏 서로 껴안으라.
외로운 인생이여,
마음껏 서로 어루만져라.

 

옮겨온 글 : (윤정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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