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드리

경주 불국사

윤정이아빠 2018. 3. 28. 12:29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 김대성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주요건물들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복구된 것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의 불국토를 3갈래로 구현한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으로,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으로 대표된다. 즉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에 의하여 단상의 불국토와 단하의

      속계로 양분된다. 석단 위에 청운교·백운교, 칠보교·연화교라는 2쌍의 다리를 놓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과 다보탑은 쌍탑구조이다. 극락전에는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안치했으며,

      무설전 뒤에는 관음전이 있다...(옮겨온 글 : 이외태).

 

  통일신라시대 서라벌(慶州)의 모량리에 살았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는 외동아들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의 머리가 크고 이마가 유난히 넓어

  성(城)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하였다.

 

  어머니 경조와 대성은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여 약간의 밭을 얻었고, 그 밭을 일구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흥륜사의 점개(漸開)스님이 참회법회인 육륜회(六輪會)를

  개최하기 위해 이집 저집으로 화주를 다니다가 복안의 집에 이르렀고,

  주인 복안이 베 50필을 선뜻 시주하자 점개스님은 축원을 해 주었다.

 

  "보시를 좋아하니 선신이 늘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한 가지 물건을 보시하시면 만 배를 얻어 안락하고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대성은 어머니께로 달려가 말씀드렸다.

 

  "흥륜사 스님 말씀이 '하나를 시주하면 만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생부터 선업을 짓지 못해 금생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인데,

 

  금생에도 시주를 못하였으니 내생의 곤궁이 환히 보이는듯 하옵니다.

  저희 집안 전 재산인 밭 세 이랑을 흥륜사 불사에 시주하여

  내생의 좋은 응보(應報)를 받도록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쾌히 승낙을 하고 그 밭을 점개스님께 보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대성이 죽었는데, 그가 죽던 날

 

  국상(國相) 김문량(金文亮)의 꿈에 한 동자가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저는 모량리에 사는 대성이라는 아이입니다.

 

  이제 국상 내외를 부모로 삼아 태어나고자 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십시오."

  국상이 꿈이 하도 생생하고 신기하여 곧 사람을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모량리 경조의 집에서는 대성의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상은 후히 돈과 쌀을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하고,

 

  또 그 어머니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논과 밭도 주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큰 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날 밤 꿈에 그 곰이 나타나 무섭게 대들며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잡아 죽였느냐? 전생에도 나를 괴롭히더니,

 

  이생에서 또다시 나를 죽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괴롭히리라."

  대성이 벌벌 떨면서 물었다. "너는 누구인데 나를 전생부터의 원수라 이르느냐?"

 

  "나는 모량리 부자 복안의 딸 곰녀였다.

  그때 너를 사모하였으나 네가 듣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동나무에 목을 메어 죽었노라.

  그리하여 곰으로 태어났다가 너를 다시 만나 반가히 따랐는데,

  네가 나를 활로 쏘아 죽였으니 어찌 원수가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나의 잘못이 참으로 컸구나.

  내가 모르고 한 것이니 용서해 다오.

 

  이제부터라도 다시는 원수의 인연을 맺지 말자.

  그리하면 내 너를 위해 마땅히 좋은 일을 하리라."

 

  "그렇다면 나를 위해 절을 하나 지어 다오.

  불법을 신앙하여 마음을 개심하고 해탈을 얻겠노라.'

 

  이 말을 듣고 깨어난 대성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성은 깨어나자마자 전생의 어머니를 찾아가 이 사실을 물었다.

 

  "어머니, 모량리 복안의 집에 죽은 딸이 있습니까?"

  대성은 질문과 함께 어머니께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단다. 네 나이 열여덟이 되던 해에

  그 집의 무남독녀 곰녀가 너를 사모하였으나,

 

  네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비관하여

  오동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일이 있다.

 

  그 뒤 네가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으므로,

  나는 필시 그녀의 원귀가 작동하여 잡아간 것으로만 알았었다.

 

  뜻밖에 네가 재상의 집에 태어났기에 나는 크게 맘을 놓을 수 있었단다.

  그런데 이제 네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구나.

 

  네가 만일 그녀에게 절을 지어 줄 약속을 하였다면

  결정코 약속을 이행하여 다시는 나쁜 인연을 맺지 않도록 하여라.

 

  " 대성은 그 뒤부터 사냥을 하지 않고 오직 불법에 뜻을 두어

  크게 자비심을 일으켰으며, 그 곰을 위해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주었다.

 

  이렇게 윤회와 인과응보의 철칙을 체험한 대성은 전생의

  부모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보은의 불사를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축조하였다.

 

  불국사(佛國寺)는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吐含山)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이다.

 

 

 

 

 

 

 

 

 

 

 

 

 

  이 절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서기 751년)에 김대성(金大城)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石窟庵)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김대성은 서기 774년까지 24년 동안

  이 대사업을 이끌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자 국가에 의해 완공을 보았는데 무려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축조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석가탑,

  청운교·백운교, 극락전 12칸, 무설전 32칸, 비로전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개의 건물에 총 2천 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593년 5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 웅장한 대사찰은 불에 타고 말았다.

 

  그러자 선조 37년(1604년)경부터

  약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그러다 조선조 말기가 되자 이 사찰의 운명도 기울어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

 

                              중요 보물들이 도난당하기도 하였다.

 

  일제 때인 1924년에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

  대규모의 개수공사가 이루어졌으나 이에 대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으로

  개보수(改補修)가 이루어지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어

 

  1970년 2월에 공사를 착수하여 1973년 6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대부분의 사찰건물들이 그러하듯이

 

  이 불국사 건축에 쓰인 돌과 목재 등의 자재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배치된 공간까지도 인간의 정성과 염원이 깃들이지 않은 것이 없다.

 

  자신의 구원, 부모의 명복, 국가의 안녕, 백성의 평안,

  악마의 퇴치 등 이 모든 염원이 돌 하나, 나무 한 토막에도 스며 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신라시대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로 인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불국사(佛國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며, 이제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함께 간직하게 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옮겨온 글)

                    2018년 3월 21일(경주 불국사에서 칭구들과)윤정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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